학년이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늙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.
스키마가 쌓이고 노하우가 생긴다.
오전 시간에 책을 한번 훌터보고는 C교수님과 식사 약속으로 많이 못봤는데...
다행히 모든 문제에 다 채워넣었다.
L교수님의 기준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...
사실 건축론은 재이수다.
2006년 2학기 기말 쯤에 지금보다 몸이 좀 더 아팠고,
기말고사를 본다는 것 자체가 좀 힘들다는 핑계로 중간고사로 대체해 달라고 부탁드렸었다.
당시에는 L교수님의 해외 파견으로 다른 강사분이 강의하셨는데 꽤 인간미 넘치는 분이시다.
지금 생각해 보면 중간고사를 대충 잘봐두었다는 안도감과 그 강사분이라면 허락해 줄거라는
그리고 난 아프니까.... 라는 자기 합리화한 내 비겁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.
공부하기에는 부담이 되고, 적당히 동정심을 이용해서 최하점보다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겠다라는
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. 아니 그랬다.
결국 그 학기부터 우리 과가 상대평가로 전환되어 기말고사를 보지 않는 나는 당연히
최하점을 받게되었고, 그게 다행이었다고 생각이든다.
아프다는 건 죄가 아니지만... 절대 장점이 될 수 없다.
지금 죽지 않는다면, 내일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은 반드시 해야하고
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.
그 학기 때에 건축론 말고도 다른 몇가지 일로
세상은 봐주는 것이 아니고, 회피식의 대응은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았다.
스스로도 아프다는 핑계 따위는 잊으려 노력한다.
사실 아프다는 점을 핑계로 삼는 것과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많은 혼란이 생긴다.
처음 퇴원고 나올 때에는, 매운 김치한 조각, 소화가 좀 안된다는 기름진 음식들
한입 먹기가 조금 망설여지는 도전이었다.
내 인생은 정말 특별히 남들과는 달라지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었는데...
지금은 스스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,
1년동안 남들보다 2번 더 설계 과목을 들으며 밤을 지새고,
아침에 화장실서 끙끙거려도 밤에는 클럽에 가 남들보다 더 잘 놀수 있는
대범함이 생겼지 않은가.
남들이 생각하면 웃을지 모르지만 난치성의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잘안다.
한번 두번 재발하고 좌절하다보면 어떤 것들은 시도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일 때도 있다.
아무튼 그 때보다 강해졌지 않나 생각이 든다.
물론 아직도 부족한 나약한 인간이지만...
오늘 건축론 셤 시간에 감독하는 대학원 형이 물었다
"넌 왜 재이수 하냐?"
"기말고사를 안봐서요"라고 살짝 멋쩍은 웃음을 지어주었다.
가끔 제멋대로인 철없는 자식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,
그게 동정심보다는 낫지 않을까?
솔직히 아직 떳떳하게 나의 아픔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은 없다.
다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고, 결혼도 모르겠다.
좀 더 노력해야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.
몇알의 알약보다 정신을 가다듬는 한번의 호흡이 나에게는 힘이 되니까.
티스토리를 쓴지 몇일만에 방문수가 올라가는게 신기하다 누군가가 보는 걸까?